올해 서울변방연극제는 창작자, 작품, 관객의 다양한 연결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잡말레터>는 그동안 축제가 쌓아온 미션이나 동시대 공연예술의 미학적 성취와는 무관합니다. 취약하고 오염되고 더러운 것들이라는 언어들에서 연상되는 쓸데없고 잡스러운 말들을 이곳에 자유분방하게 풀어 놓음으로써 새로운 제안과 담론의 확장을 기대합니다. 6월부터 8월까지 열흘에 한 번씩 에디터의 잡소리와 최근의 관심사, 가끔 서울변방연극제의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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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더위를 알리는 소서(小暑)에 접어들었는데 무탈히 잘 지내고 계시는가요. 저는 여러 의미로 스펙타클한 상반기를 지나 보냈고 전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7월을 맞이했습니다. 얼마 전까지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안 한 지 꽤 되었는데요.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참지 못하고 배불리 먹고 뒤돌아서서 후회하는 타입이라 살이 많이 쪘습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얼굴에 살도 많이 붙은 것 같고 체중도 훨씬 더 많이 나가 보이는 것 같고요.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들 하는데 칭찬인지 아니면 살쪘다고 돌려 까기를 하는 건지 구분이 안 돼서 괜히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외모 강박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살찌는 것이 걱정되는 마음까지는 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삐쩍 마른 몸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체중이 저의 자존감을 결정하는 것도 아닌 데도요.
최근 십대들 사이에서 뼈가 보일 정도로 마름을 추구하는 이른바 ‘뼈말라’, ‘프로아나(pro-ana)’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합니다. 프로아나는 ‘찬성하다’라는 뜻의 ‘pro’와 거식증을 뜻하는 ‘anorexia’의 합성어인데요, 무작정 굶거나 극단적으로 마른 몸을 선망하고, 섭식장애의 치료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신조어예요.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 #프로아나_트친소와 같은 해시태그가 등장한 지도 꽤 됐는데, 주로 십대 여성들이 올리는 글로, 마른 몸을 위해 단식 수준으로 굶거나,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고, 변비약이나 이뇨제 등을 습관적으로 먹으면서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 최근 마약류 식욕 억제제인 일명 ‘나비약’ 투약 및 소지로 검거된 피의자의 대다수가 십대였죠.
이렇듯 섭식장애(eating disorder)를 겪는 여성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섭식장애는 음식 섭취를 거부하거나 의도적으로 억제하는 신경성 식욕부진(거식증), 비정상적으로 많이 먹고 의도적으로 구토나 설사를 하는 신경성 폭식증, 폭식장애, 회피제한성 섭취장애 등을 포함합니다. 올해 초에 채널A 예능 <요즘 육아-금쪽같은 내새끼>에서 거식 증세를 보인 십대의 사연을 다루기도 했었는데요. 거식증 발병의 원인은 저마다 다를 테지만, 물리적인 거식만 있는 게 아니라 정서를 담은 마음의 그릇이 비어있다는 오은영 박사의 진단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거식증은 모든 정신질환 중에서도 자살률과 사망률이 가장 높다고 합니다. 식욕 억제제 과다 복용, ‘먹토(먹고 토하기)’, ‘씹뱉(씹고 뱉기)’ 등 잘못된 방식으로 섭식장애를 앓고, 환각과 우울증, 강박증 등 정신질환도 동반하기 때문에 사회적 고립도 흔하고요. 그럼에도 섭식장애를 앓은 사람들은 스스로 질병을 인식하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고 합니다. 완치한 줄 알았다가 여러 번 재발하기도 하고요.
제가 처음 거식증의 삶으로 미끄러진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마른 몸을 선망하거나 살이 찔까 봐 두려운 마음 때문은 아니었어요. 누구나 한 번은 인생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을 지날 때가 있다고 하잖아요? 제게는 그때가 출구도 없는 긴 터널 속에 갇힌 것 같았습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 없이 아침이면 눈을 뜨고 제때 밥을 먹고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밤이면 잠에 들고 다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스스로가 끔찍하게 싫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자학과 자기혐오가 심해지면서 가장 먼저 잠을 줄였고, 그다음엔 말과 감정을 줄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목구멍에 뭐가 걸린 것처럼 답답하고 불쾌감이 사라지질 않았어요. 그때부터 억지로 구토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 식후 바로 구토를 해버리는 새로운 습관으로 이어졌습니다. 증상이 심해지면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많아졌고 나중에는 목에서 피가 날 만큼 억지로 토하는 상태가 되니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저도 제가 이해가 안 됐던 게, 분명 어제는 아무런 음식도 못 먹을 것 같았는데 오늘은 아무렇지 않게 음식이 들어가고, 어떤 날은 물만 마셔도 다 게워 내고. 벗어나고 싶었는데 습관이 쉽게 고쳐지지 않더라고요.
이유를 모르던 가족들도 처음에는 걱정하다가 몇 개월이 지나도 상태가 나아지질 않자 제게 비난과 화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된 심리상담이나 약물치료를 받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저도 부모도 갑작스레 찾아온 질병을 숨기기 바빴습니다. 이대로 토하다 죽으면 어떡하지 싶다가도 가족들에게 미움받기 싫어서 최대한 소리 내지 않고 빨리 잘 게워 내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그렇게 저는 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섭식장애의 세계로 도피했습니다. 돌아보면 저의 섭식장애는 과거 트라우마의 잔해였습니다. 더 제대로 애정과 관심을 받고 싶고, 내 마음에 꼭 드는 인정을 받고 싶었는데, 그 모든 것에 원하던 사랑을 받지 못한 저는 타인을 탓할 줄도 몰라서 온 힘을 다해 스스로를 괴롭혔던 거였어요. 그렇게 음식을 먹는 족족 게워 내고 다시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면서 ‘내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잖아요’, ‘한 번만 나를 바라봐 줘요’ 라고 끝없이 외쳤습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타인에게 원하는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몇 년간 거식증을 앓으면서 완치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이유로 섭식장애가 재발했습니다. 갑자기 체중이 증가한 제 모습이 꼴 보기 싫더라고요. 가족들과 식사할 때면 유독 저에게만 살찐다면서 많이 먹지 말라는 말도 너무 스트레스였어요. 그때부터 보여지는 몸, 체중계에 찍히는 숫자에 집착하면서 단식투쟁하는 것처럼 딱 죽지 않을 만큼의 양의 음식만 먹고 매일 네 시간씩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서 살 빠졌네, 예뻐졌다, 이런 말들을 들으니까 어떻게든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졌어요. 살을 빼면 뺄수록 말라깽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습니다. 먹고 토하는 건 제게 너무나도 쉽고 익숙한 방식이기도 하고, 굶었을 때는 배고픔을 참기 힘든데 먹토는 배를 채웠다 비우는 거라서 좀 더 효과적인 다이어트 같았어요. 친구들이랑 밥을 먹고 곧바로 화장실에 가서 위액이 나올 때까지 입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게워 내면 그제야 안심했습니다. 토하지 않는(못한) 날에는 먹은 게 다 살로 갈까봐 불안에 떨었죠. 그럴 때는 억지로 더 많이 먹었습니다. 음식물이 속에 가득 차올랐을 때 비로소 100% 게워 낼 수 있거든요.
그렇게 원하던 개마른 사람이 됐는데도 항상 고통을 참아야만 했습니다. 먹토 습관 때문에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살 수밖에 없었고, 영양이 부족하니 머리도 안 돌아가고, 제대로 먹은 게 없어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런 상태인 걸 가족, 친구들이 알면 저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까봐 아무한테도 제 상태를 드러낼 수 없었어요. 또 그러느냐는 짜증 섞인 말, 그냥 좀 먹으라는 귀찮음이 묻어나는 말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운동과 식단으로 건강하게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처럼 여겨지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제는 압니다. 예쁘고 날씬해야만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며, 정해진 아름다움의 기준 같은 건 없다는 것을요. 여전히 많은 여성들, 특히 1020 세대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과 돈을 갉아먹으면서 다이어트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을 개인의 의지박약, 자기 관리 부족, 외모 강박 정도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극단적으로 마른 몸이 아름답다고 여겨지고, 미디어에 과도하게 노출되는 사회문화적 메시지에 근본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를 제대로 알 때 섭식장애를 앓는 이들에 대한 시선도 달라질 수 있을 테니까요. 오늘은 여기서 이만, 다음 호에서 만나요!
잡말레터 에디터 계피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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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갔었던 비건식당 알배추구이
최근 채식, 비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축제가 열리는 서울의 공연장 주변에 ‘비건 옵션 선택’이 가능한 음식점과 카페를 소개합니다.
서대문 신촌문화발전소: 신촌과 이대 사이 샌드위치 맛집 <이 세계는 놀이터예요>, 속이 편한 한 그릇 식당 <써니보울>에서 식사를 하고, 공연 끝나면 비건 바 <미스터리>에서 버섯 가지 꿔바로우에 술 한 잔ㅣ마포 탈영역우정국: 상수역 근처 <슬런치 팩토리>에서 밥 먹고 산책할 겸 극장까지 걷기(도보 12분)ㅣ성북 여행자극장: 혜화동 비건 카페 <달냥>에서 식사와 후식을 한 방에! 아니면 (비건식당은 아니지만) 한성대입구역 <밥짓고티우림>에서 연잎밥+제철 장아찌 먹고 <아케미>에서 비건 아이스크림 맛보기 *가게 이름을 클릭하면 대표 계정 또는 네이버 지도로 연결됩니다. |
© 변화의월담 (촬영 작가: 박혜정)
예술, 과학, 운동의 경계에서 만나는 날 것의 몸 ‘변방스포츠’
무겁고 경직된 머리를 잠시 내려놓고, 새롭게 인지하는 세계를 '몸'으로 만나보면 어떨까요? 취약함과 아픔을 나누는 관계, 몸과 영혼을 살리는 시간, 경계들이 춤추고 시공간이 움직이며 새로운 관계들이 펼쳐지는 놀이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운동을 싫어하는 분들, 건강하지 못한 분일수록 더욱 환영! 변화의월담에서 준비한 ‘변방스포츠’에서 함께 놀면서 운동과 건강의 경계를 녹여봅시다. 문의는 카카오톡 채널 @smtf 로, 신청은 변화의월담 웹사이트에서, 7월 18일(화) 18시 10분에 노들섬 다목적홀 숲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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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히 살펴서 앞으로 잡말레터를 만들어가는 데 참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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