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정말 기괴하고 잔인한 영화를 봤습니다. 인간의 몸에 기계가 결합한 혼종적 존재를 다룬 내용인데요.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최첨단 수트를 입은 아이언맨이나 전신이 사이보그인 가제트 형사가 아니라, 훨씬 더 아날로그적으로 신체를 변형한 기계 인간이 등장하는 영화였어요.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봤다가 시종일관 그로테스크하고 기분이 나빠서 한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더라고요. 이렇게 진한 인상을 남겼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만큼 감독의 의도대로 잘 만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지만요. 아무튼 저는 비슷한 류의 영화와 드라마를 몇 편 더 보게 되었고, 요즘 여기저기 등장하는 포스트휴먼이라는 개념부터 시작해서 신체 변형, 사이보그, 포스트 바디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들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사이보그라고 하면 우리는 손쉽게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인조인간의 형상을 떠올릴 수 있을 텐데요. 사이보그(cyborg)는 인공두뇌학을 뜻하는 ‘사이버네틱(cybernetics)’과 유기체란 뜻의 ‘오거니즘(organism)’의 합성어로, 1960년에 과학자 맨프레드 클라인스와 네이선 클라인이 공동으로 발표한 논문 ‘사이보그와 우주’에서 처음 도입된 개념입니다. 이들은 “사람은 장기 이식과 약물을 통해 개조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면 우주복을 입지 않고도 우주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기술적으로 개조된 인체, 곧 기계와 유기체의 합성물을 사이보그라고 명명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꼭 사람만이 사이보그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닌 거죠. 박테리아나 곰팡이 같은 미생물도 사이보그라고 볼 수 있고요.
오랫동안 SF 영화나 문학에서 다뤄져 왔던 기계 인간으로서의 사이보그 개념을 “자연이 부여한 신체 기능에 인공적인 것을 추가한 사람”으로 보다 확대해서 이해한다면, 단순하게는 안경을 쓴 사람부터 금니나 임플란트와 같은 보철물을 사용하거나, 얼굴이나 가슴에 실리콘 보형물 같은 인공 물질을 삽입하는 성형수술을 한 사람도 사이보그 아닌가요? 오늘날에는 장애와 노화 등으로 인공 심장이나 인공 관절, 보청기, 의수와 의족을 장착한 사람들을 사이보그에 비교하기도 해요. 성형수술이나 의학 기술을 통해 신체의 기능이나 외형을 변형하는 것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차치하더라도,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이미 모두 사이보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의학 지식 및 기술에서 자유로운 현대인은 거의 없으니까요.
2019년에 영국 BBC가 방영한 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Years and Years)>에는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가족의 딸인 베서니는 자신이 생물학적 몸에 속박된 존재라는 사실을 못 견뎌하면서 스스로를 디지털화하여 ‘트랜스휴먼’이 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어요. 언젠가부터 베서니의 컴퓨터 검색 창은 온통 ‘트랜스(trans)’라는 말로 넘쳐 나게 되죠. ‘트랜스’라고 하면 당연하게도 ‘트랜스젠더’를 떠올리게 되잖아요. 베서니의 부모도 이를 ‘트랜스섹슈얼’로 오해하면서 자식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일 마음을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베서니는 신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뇌를 디지털 정보로 변환해서 클라우드에 저장시키고,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는 삶을 택하겠다고 말해요. 예상하지 못한 발언에 경악한 부모는 트랜스젠더는 인정할 수 있어도 육체가 사라지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소리를 지르죠. “너 이제 인터넷 금지야!!!”
2019년에서 2034년을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가족의 일상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것들을 다루고 있어요. 계급격차, 사회 양극화, 자연재해, 인종, 난민, 빈곤, 혐오, 차별, 무역전쟁, 멸종 등.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는 이미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베서니와 같은 트랜스휴먼도 있죠. 오늘날 첨단 기술과 기계의 발전으로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용어를 종종 볼 수 있는데, 포스트휴머니즘에도 여러 갈래가 있어요. 기술을 극단으로 이용해서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이 가진 지적, 육체적, 심리적 능력을 근본적으로 개선 혹은 향상시키려는 시도와 그 가능성을 긍정하는 트랜스휴머니즘도 포스트휴머니즘에 속합니다. 이러한 인간 향상 시도의 결과로 트랜스휴먼이 되는 거고요.
현재의 트랜스휴먼 논의에서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이어즈 앤 이어즈>에서 베서니가 꿈꾸는 것처럼 신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신 혹은 자아를 디지털화해서 컴퓨터로 이전하는 업로딩일 것 같습니다. 정말로 육체를 버리고 트랜스휴먼이 되는 미래는 가능한 걸까요? 그런 날이 온다면 우리는 어디까지를 인간이고 어디까지를 인간이 아니라고 하게 될까요? 그런데, 육체를 떠나간 정신을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상상이 현실로 실현되는 미래는 어쩌면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올지도 모릅니다. 만일 충분한 경제적 지원과 시술의 부작용이 거의 없는 정도의 안정성이 확보되고, 심지어 물리적인 고통도 없이 기계로 육체나 정신을 대체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