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어.
2018년에 발매된 국민 첫사랑 수지(SUZY)의 노래 제목입니다. 만약에 내 배우자, 나의 연인에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믿고 싶지 않고 믿을 수도 없는 이야기겠죠. 뒤이은 말이 “그렇지만, 당신도 사랑하고 있어.”라면 더욱 당황할 겁니다. 하지만, “폴리아모리” 관계에 있는 상대방이라면 다른 반응을 보일 거예요. 그들은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지향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죠.
“폴리아모리(Polyamory)”는 ‘많음’을 뜻하는 ‘Poly’과 ‘사랑’을 뜻하는 라틴어 ‘Amor’의 합성어입니다. 저는 이 단어를 어떤 웹툰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네이버에서 2013년부터 연재했던 <독신으로 살겠다>라는 웹툰인데요. 결혼에 맞지 않는 여자라는 말을 연인한테서 들은 주인공이 제도권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사랑을 찾아가 보는 이야기를 담은 웹툰입니다. 주인공은 폴리아모리를 연인에게 제안받고 홧김에 수락했지만, 진심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이 웹툰이 연재할 당시에 주인공의 문란(?)한 연애 활동 때문에 별점 테러도 당하고 댓글 공격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렇게 다수의 사람이 받아들이기 힘든 “비독점적 다자연애”, 폴리아모리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볼까 합니다.
“비독점적 다자연애” 일명, 폴리아모리란 상대방을 독점하지 않는 관계 맺기로 개인이 동시에 여러 사람과 성애 또는 무성애적인 관계 맺음을 지지하는 철학 또는 생활방식을 뜻합니다. 뜻풀이를 보면 다수가 인정하는 연애관, 결혼관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특히 비독점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큰 차이점이죠. 다수의 국가에서 통용되고 있는 결혼제도는 모노가미(Monogamy), 일부일처제를 기반으로 합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현행법상 인정받는 관계는 “독점”입니다. 그래서 더욱 거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런 형태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 불륜과 바람의 합리화해주는 거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그들의 의견도 타당합니다. 불륜과 바람에 이용하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이 라이프스타일이 오염된 거니까요. 혼인신고서를 구청에 제출하여야만 혼인이 인정되듯이 폴리아모리에도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상호 합의”입니다.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려는 의지 확인이 먼저입니다. 상대방의 동의로 이루어지는 관계이죠. 바람과 불륜은 독점관계에 있는 상대방과 합의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바람과 불륜을 저지른 상대방을 비난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폴리아모리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마음대로 캐쥬얼 관계를 맺어도 되는 건 물론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관계 안에 있는 연인 혹은 배우자끼리 상호 합의로 만든 “규칙”에 따라야겠죠.
저는 이런 측면에서 굉장히 합리적인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직접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행위 자체가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본 것이죠. 가족 간의 갈등, 친구와의 갈등, 연인과의 갈등, 수많은 갈등은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것 같아요. 사실 일반적으로 가족, 친구, 연인 사이에 어떤 규칙을 만들어서 관계를 이어 나가진 않잖아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일련의 패턴들을 통해 의식 혹은 무의식적으로 좋고 싫음을 인지하여 관계를 유지해나가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소소하게 쌓이는 감정들에 대해서 어떻게 풀어서 해결해야 할지 해결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죠. 결국은 그것이 관계를 망치고 나아가 자신을 망치는 행동인지도 몰랐습니다.
저의 경험을 말씀드려보자면, 저는 일대일의 관계일 때 상대방을 소유하려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이런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는 자신을 향한 자책과 스트레스가 엄청났죠. 항상 상대방을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저를 잃어버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애를 쉬면서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장단점부터 제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을 알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죠. 그렇게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대일 관계에서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건 소유욕이었어요. 상대방과의 온건한 관계를 존중하기보단 온전히 나에게만 관심을 쏟길 바랐던 거예요. 소유욕이 나쁜 건가요라고 되묻는다면, 그건 아닙니다. 그렇게 행동했을 때 저에게 오는 스트레스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폴리아모리라는 생활방식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독점하지 않는 관계, 특히나 성애와 무성애 관계를 아우를 수 있는 철학이라면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어려웠던 부분을 긍정적으로 풀어가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고 할까요.
프로이트 정신학에 근거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회 관습적으로 나쁨에 치부되는 생각들은 무의식에 격리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배우자를 탐낸다든지, 근친상간을 욕망한다든지, 가까운 사람을 죽이고 싶다든지 등의 실행하면 법적 조치를 받게 되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금기에 반하는 행동을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누구든 사회 규범 안에서 금기라고 하는 행동을 생각해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무의식에 격리된 생각 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안 된다.”가 있지 않으신가요? 수많은 나쁜 행동이 있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같이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을 깨닫고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이 부정은 아니면 좋겠습니다. 모노가미이든 폴리아모리든 중요한 건 “책임감”입니다. 이 관계를 얼마만큼 노력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 진지하고 깊은 고찰이 선행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많이들 알고 계시는 개념이지만 다소 파격적인 키워드의 글이었는데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픈 객원 에디터의 바람을 담았습니다.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하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