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운동하며 알게 된 친구가 집 가까운 곳의 제로웨이스트샵 운영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왠지 연예인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가며 들렀었던 제로웨이스트샵 운영자였다니! 이름 없던 등장인물의 얼굴이 환하게 바뀌는 순간이었다. 괜히 혼자 반가워져 ‘이 사람과 꼭 친해지고 말리라’ 하는 야심 찬 다짐을 했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지금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거나, 기후활동 거점을 운영하는 활동가로서 재미있는 정보들을 공유해주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런데 나는 그가 그 상태였을 때부터 알게 된 관계인지라 어쩌다 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꼬치꼬치 캐물은 것은 이번 대화가 처음이었다. 실은, 어떤 대단한 계기가 있기를 바라면서 질문을 시작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대화를 하다보니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굳이 특별한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기후 위기에 두려움을 느끼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그냥 하는 것이 정답일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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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공간이 필요했다는 게 정말인가? 나는 공간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디자인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집과 멀지 않은 곳에서 사무공간을 알아봤다. 그리고 지금 가게 자리를 찾게 되었다. 전에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했는데, 공유냉장고 사업이나 환경문제 관련 인식 전환 교육 등 홍보물 디자인 일을 중점으로 했었다. 그런 일을 8년을 넘게 하고 나니까 의미 있는 일을 계속해서 이어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쌓아온 일의 의미가 완전히 새로운 일로 전환되어 없어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 연장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럼, 전략적인 출발이 아니었군? 판매를 목적으로, 그러니까 가게 운영이 1순위가 아니었다. 여기를 그냥 사무실로 쓰기에는 아까운 곳 같았다. 너무나도 무언가 도모 해야할 것 같은 공간이었던 것이다. 무얼 하면 좋을까? 고민했고, 배달 음식 때문에 쓰레기가 넘쳐난다는 기사에 붙어 쓰레기를 줄여야한다는 내용의 글을 많이 보게 되었다. 때마침 제로웨이스트샵이 점점 생겨나기 시작한 때기도 했고. 정말 너무나 단순한 시작이었다.
이전에 기후활동이나 기후위기에 관심이 있었던 것인가? 그냥 일반적인 잡화점이 아니라 ‘제로웨이스트샵’이니까.. 내 안에 그런 주제가 정확해지는 계기도 필요한 것 같다. 처음에 크게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환경오염이나 기후위기 관련 문제들은 사회적 기업을 하면서 인지는 하고 있었지. 어떤 거창한 목적으로 이것을 시작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런 활동을 하게되니까 허투루 할 수는 없겠더라.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너무 단순한 이유다 보니까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몰라서 못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조차 들어본 사람들이 많이 없을 시기여서 무엇을 하는 가게인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물론 지금도 이 단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고 이곳이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 설명을 하면서 나도 더 공부하기 시작했고 비어있던 공간을 조금씩 채워 나갔다.
지역 기후환경 활동가들의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지 않나? 가게를 오픈할 때, 환경문제에 관심 갖고 활동하는 지역 활동가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각자 살고 있는 삶과 일터에서 탄소중립과 기후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이었다. 동네에 제로웨이스트샵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반갑게 찾아오시는 분들이 생기게 되면서 좋은 고객이자 친구를 얻게 되었다.
공간이 어떤 식으로 활용되고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나? 가게가 위치한 동네에서 제로웨이스트마켓도 열었고 주변 대학생 혹은 외부팀의 제안으로 기획한 이벤트(일상의마켓)나 프로그램에 한 꼭지로 참여하기도 했다. 텀블링이라는 단체와 텀블러 수거 캠페인을 하기도 한다. 제4의 공간이라는 곳과는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 PP, PS, PE를 수거하는 거점으로 운영되고, 한시적으로 서울새활용플라자와는 플라스틱뚜껑과 폐전선들을 모으는 곳으로 운영되고 있다.
모두 ‘공간’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맞다. 성격상 먼저 나서지는 못하는데 이런 공간을 운영하고 있어서 무언가 도모되고 있다는 것이 좋다.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들, 재미있는 기획을 제안 하는 사람들을 환대해 주는 것이 좋다.
지역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욕심이 없다. 나는 이 지역커뮤니티 안에서 활동을 했기 때문에 이런 활동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더 넓게 확장하지 않고 여기서 단단해진 것이 일상공감을 지금까지 운영할 수 있게 만든 것 같다. 그리고 지역단체나 활동가들이 시기별로 계속 나를 채찍질하고 있다. 부정적인 뜻은 아니고, 활동이나 운영에 안일해 질 때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내용이나 이슈를 꺼내 나누게 되어 정신 차리게 만든다는 이야기였다. 계속 끌어주고 제안하고. 쉴 새 없이 좋은 영향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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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손수건을 쓰고 텀블러를 들고 다니지만, 모든 생활을 “제로웨이스트”로 만들지는 못할 것 같다. 나만 해도 좋아하는 캐릭터 상품이 나오면 꼭 산다. 물건을 사는 그 순간의 행복감 때문에 사는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소비를 멈추지 못한다. 제로웨이스트샵 운영자로서 본인에게 엄격한 편인가? 나는 포스터나 현수막, 리플렛 등 홍보물 디자인 제작을 겸하고 있다. 솔직히, 일시적으로 생겼다가 금세 사라지는 쓰레기들이다. 물론 친환경 제품이 개발되고 시중에 나오기는 하지만 재질이 제한적이고 제작 시간이 배로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친환경적인 홍보 방법을 고민하고 연구해야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다. 보통 이런 홍보물들이 굉장히 급히 진행되는 부분이 많이 있어 아쉽다. 주최 측 입장에서는 이런 고민이나 문제들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걸까? 관습적으로 현수막을 걸고 배너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되도록 웹으로 배포 혹은 소량제작, 코팅하지 않은 종이로 제작하게끔 제안을 한다. 이 부분에서는 많이 엄격할 수가 없다. 내 밥벌이기도 하니까! 정말 모순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지 고민을 하면서... 부대껴하며 일을 하고 있긴 하다.
그래도 소량 제작 제안 같은 변화된 모습이 있다는 거지 않나? 대체 방안을 찾으려고 고민하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고민을 의식하게 되면서 눈에 띄게 달라진 자신의 모습이 있는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데 특히 휴대용 여행용품을 너무 좋아했다. 특히 일회용품으로 편리하게 만들어진 소분된 용품들을 신기해하면서 꽤 많이 사모았었다. 숙소에 간다면 어메니티들도 너무 간편하게 잘되어 있지 않나? 그런 것을 포함해서 간편한 여행용품들을 정말 좋아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대체제들이 많이 있을 텐데 우리가 너무 기존에 썼던 것을 계속 쓰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 시작한 거다. 그래서 요즘은 숙소에 가도 최대한 손을 대지 않으려고한다. 그건 완전히 바뀌었다.
솔직히 나는 뭐 이거 하나 내가 실천한다고 달라지나? 바뀌나? 하는 무력감이 있을 때도 있다. 이게, 일상에서 보이는 일회용품이나 길에 보이는 생활 쓰레기들을 보면 저것들은 어디로가서 어떻게 처리될까? 하는 무거운 마음이 들때가 많다. 몇 년 전과 비교해 보았을 때 우린 얼마나 변했을까? 재사용 가능한 용품을 쓰거나 대중교통 이용 한다고 지구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을까? 하는 비관적인 생각도 크다. 그런데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고, 그냥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지구 온난화 심각한 거 다 알고 지금 당장 바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그냥 주저하지 말고 생활의 일부분을 바꿀 수 있는 정말 단순한 실천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다.
정말 나 같은 경우는 이런 활동에 큰 뜻이 있는 것도 아니다. ‘기후환경’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즐겁게 공간을 꾸려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겼고 함께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기면서 이런 활동을 '잘(well)'하고 싶게 된 것이다. 무력감이 들어도 뭐 어쩌겠나, 나라도 해야지. 우리 동네에서 잘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일단 그냥 하고 있다. 그냥, 그렇게 해야지 오래할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