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비상.
무너지고 있다. 나의 체력, 사고력, 사회성, 인간성, 자신감, 자존감, 통장 잔고, 나의 평온, 평화, 아무튼 내가 가진 그나마 좋은 것들은 모두 바닥을 뚫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정신이 계속 오락가락하면서 한곳(나 자신)에 모여 있지 않은 것 같고 서로 충돌하는 듯한 위기감. 모든 내외부 공격에 취약해진 상태로 내가 "내가 아닌 사람"처럼 느껴질 때 나는 제일 먼저 스스로를 후려친다. 엄청나게 스트레스 받을 만한 일은 없었는데? 그냥 더위 먹은 거 아니야? 그러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정확히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기는 한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의아할 때, 내뱉는 말이 제대로 된 말(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구성과 표현력을 갖추고 내 의도를 명확히 담고 있는 말)인지 의심스러울 때 가능한 가장 이른 날짜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예약한다. 지금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안정적이고 조용한 사람 중 하나가 빌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일어날 수 있으니 각오해라.
어디 가서 자신을 활동가라 소개하지 않지만* 일단 나는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첫 직장에서 “참을 수 없는 사람과 상황”을 벗어나려다 여기 도착했다. 나에게는 대안 일터인 셈인데, 대안 일터에서도 견디기 힘들고 도망쳐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첫 직장과 비교해 오히려 여기서 더 빈번하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첫 직장에서의 시간이 미화된 게 아니라면). 적어도 내 옆자리, 뒷자리, 앞자리, 대각선의 활동가는 언젠가부터 내내 힘들어하고 있다. 마음이든 몸이든 어딘가 좋지 않다. 나도 그렇다. 일전에 내 자리의 주인이었던 활동가와 그 옆자리, 뒷자리의 활동가도 힘들다고 했다. 그렇다 해서 한순간에 그만두지는 않았다. 문제적 상황을 공론화하고 개선하려 했다. 그런 노력은 “계속 여기 함께 있고 싶다는 바람”에 기인한 거라고 생각한다.
매번 울고 욕하고 실망하면서도** 우리는 왜 여기 이러고 있는 걸까. 나도 나를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이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를 하나의 명확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곤란한 듯해 보인다. 생존하는 데 쓰고 나면 한 줌 남을까 말까 한 월급, 애매한 이력, 불안한 노후, 가족과 친구들의 무관심***, 과도하고 무리한 업무와 나아지지 않는 조직문화, 일을 더 힘들게 만드는 현 정권(이하 생략).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해도 잘할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몸도 정신도 망가지고 있는데. 여기서 좋은 건 대체 뭔가. 사명이나 대의는 이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냥 어쩌다 보니, 발 한번 들였을 뿐인데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맨날 나가고 싶다 염불을 외면서도. 다들 그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인 거겠지. 조직과 운동이, 사회가, 우리의 세계가 마땅한 방향으로 진전되길 상상하면서. 그리고 상상의 끝에는 다시 이 세계의 구성물인 내가 있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나”를 위해서라는 걸 인정하자. 내가 지금 발 딛고 있으며 임종 직전까지 머물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다.
나를 무한히 확장하면 우리. 문제에 공감하는 사람을 찾아 포섭하고 공동의 문제로 만들어 가담하게 한다. 낯설고 먼 타인의 삶에서 외롭고 고통으로 가득 찬 자신을 발견한다. 연결되어 있음을 한 번 깨닫고 난 다음에는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지. 아무것도 몰랐던 때로 혹은 나와 무관하다고 여겼던 때로. 모두에게 그런 충격이 필요하다. 이건 당신의 일이면서 또 나의 일이고 우리 모두의 일이다. 나와 내 옆의 나, 그 옆의 내가 마음을 모으고 의견을 조율해 더 크게 목소리 낸다. 이때 주의할 점은 나를 망가뜨리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우리가 가진 건 사람밖에 없으니까, 더는 소진되지 않도록 의사결정권자들은 매우 힘써주시길 바란다.
나는 이제 이리저리 부유하는 정신을 붙잡는 데 집중하려 한다. 참고로 일전에 도움이 됐던 건 첫째, 내 일의 필요성과 방향 재점검, 둘째, 믿고 의지할 동료였다. 이번에도 신세를 좀 지면서 내일 충동적으로 퇴사하지 않을 수 있게 몸과 마음을 잘 돌봐야지. 지금 내 상태를 친구에게 털어놓았더니 모든 걸 다 떠나서 내가 살아야 한다며 먼저 몸이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라는 답변을 받았다. “최선으로는 부족할 거 같고 반드시 해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이 누추한 글을 누가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다 연이 닿아 읽게 된 분께는 (당신이 활동가 또는 곧 활동가가 될 사람이 아니라면)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이고 싶다. 몰이해는 어디에서 오는가? 가까이하고 익숙해지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활동가를 가까이 두세요. 오래 보고 익숙해지세요. 활동가를 아껴줍시다. 감사합니다.
* 대외적 공식적으로 활동가라고 소개할 때도 있는 선택적 활동가다.
** 그와 비례하게 웃음 넘치는 일도 많으니 혹시라도 내가 몸담은 곳이 지옥불인가? 라는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나에게는 소수의 자존감 지킴이가 있어 평소에는 괜찮지만, 가족과의 대화에서 이따금 마음을 다치는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