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나는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창자를 본 일이 있다. 다른 이의 창자는 아니고 나의 창자. 고개를 살짝 숙여 흘끗 쳐다보았을 때, 마치 위 내시경을 할 때나 보았던 색깔, 고깃집에서 본 것만 같지만 그것보다는 살아 있는 색깔. 창자를 보게 된 까닭은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는데, 그보다 다시 피부를 봉합하던 시점으로 넘어가 보자. 그러저러한 이유로 전신마취를 할 수 없어 국소마취로, 뱃가죽을 한 땀 한 땀 실로 꿰매는 시간을 겪었다. 바느질을 해본 경험이 있는가? 가죽이나 두꺼운 천을 꿰맬 때, 바늘로 천을 뚫고 두툼한 실을 쫙 잡아당길 때, 그 천에서 느껴지는 팽팽한 감각을 손끝으로 느껴본 적이 있는지? 내 뱃가죽에서도 그런 감각이 느껴졌다. 물론 당연히 아팠다. ‘아프다’라는 동사가 부족하게 느껴져서 억울할 정도로. 하지만 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 몸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놓이기 마련이다. 사물로서의 몸, 그냥 body. 무엇을 시행하는지도 모르고 왜 시행하는지도 모르고, 바퀴 달린 침대를 굴려주는 대로 이동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누가 처음으로 이렇게 피부를 자르고, 장기를 오려 붙이고, 실로 꿰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나는 당연히 (왜 당연히?) 양차 세계대전 중에 이러한 외과 수술이 발전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보니 그보다 훨씬 더 옛날부터, 고대부터 외과 수술에 대한 기록이 존재했다. 몸을 고쳐 쓴다는 발상은 내 추측보다 오래된 것이었구나… 어쨌든 다쳤으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보통 그렇게들 생각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고통의 차원에서 그 아픔을 줄여주거나 없애주는 일과, 몸을 고쳐서 다시 기능하게 만든다는 일은 나에게는 꽤 별개의 일로 느껴진다. 고통이야 없으면 좋다. 그러나 몸을 고쳐 쓰기, 치료하기, 치유하기, 원상 복구하기, ‘돌아오게’ 하기는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한 번 손상이 된 것은 어쨌든 손상이 된 것이다. 되돌릴 수는 없다. 시간도 되돌릴 수 없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손상을 가진 몸으로 살아갈 때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난점이 있는데, 내가 느끼기에 가장 큰 것은 노동과 맺는 관계이다. 사람은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스스로를 먹여 살려야 한다. 심지어 보상을 받는 과정에서도 내가 얼마나 나의 노동력을 상실했는지가 판단의 지표였다. 그리고 꼭 그러한 이유뿐 아니라 자아실현이나 자기만족으로서도 사람은 일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내 몸의 회복을 최우선으로 두었지만, 나는 그러는 와중에도 일을 하고 싶었다. 사실 일이라는 것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다쳤기 때문에 내가 나의 이력을 잘 펼쳐나갈 수 있을지 불안했다. 나는 늘 일을 ‘잘’ 하고 싶어 했고, ‘핑계’를 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타인의 평가는 물론이거니와 나 스스로가 만족하는 정도로 시간을 쏟고 완성도 있는 일을 해내고 싶어 했다. 그것이 나의 효능감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느 정도로 일을 할 수 있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의사가 작성한 영어 가득한 진단명은 그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내가 스스로 어느 정도의 일을 할 수 있는지 간을 보아야 했다. 고쳐 쓴다는 발상이 자본주의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능력을 발휘하고 싶어 하고, 하지만 그 능력을 위한 노력의 시간을 견뎌주지 않는 몸의 눈치를 보면서.
여기서 잠깐 인용하기. 수전 웬델의 책 『거부당한 몸』(강진영 외 옮김, 그린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건강한 사람들(아니면 웬만큼 건강한 사람들)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그렇게까지 아파 보이진 않는다고 하고, 내가 말하는 게 아픈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 나는 이따금씩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의 한계를 떠올리도록 해주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불평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불쌍하게 보이지 않으면서 서로 무안하지 않게 설득하고 상기시켜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내 몫의 일을 충분히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그렇게 나무랄 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이 이러이러한 한계를 갖고 있다고 똑같은 말을 계속 해주는 것밖에 없다.” (26~27쪽)
처음 이 문장을 만났을 때는 반가웠다. 스스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기분을 저명한 학자가 차분하게 설명해 주는 것 같아서. 그리고 나만 이러한 느낌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일을 하고 싶었다는 말과 상충한다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나는 ‘회복’이 예정된 환자라는 것에 늘 복합적인 감정을 가졌다. 점점 의학적으로 나아지는 내 몸이 낯설었다. 그리고 겉모습으로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내 몸이, 사실 싫었다. 낫고 싶지만 낫고 싶지 않았다. 아주 때로는 여러 진단서에 있는 단어들을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게끔 하고 싶었다. 혹은 흉터가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손상/장애와 달리, 나는 매번 이러한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에 삐뚠 마음을 가졌다. 눈에 보이는 손상/장애를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결정해서 ‘배려’하는 것도 뜯어보아야 하는 문제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번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해야 하는 일이 남에게도 나에게도 편치 않았다. 언제나 내가 설명을 위해 사용하는 말들은 과잉된 것 같았고, 그러한 말들을 듣는 타인이 할 수 있는 대답은 “헉, 그렇구나.”말고 없는 것 같아서.
권위를 가진 사람이 내려주는 진단명이나 논리정연한 말이 잠시간의 명쾌함을 줄 수는 있지만, 역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나는 나의 ‘한계’를 설명할 때마다 오히려 내가 스스로를 한계 짓고 있는 것만 같아 그것을 뛰어넘고 싶기도 하였다. 물론 그러다 큰코다치기도 했다. 운이 좋게도 나의 동료들은 나의 ‘상태’를 종종 걱정하고, 나의 ‘설명’을 ‘변명’으로 치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일할 수 있을까? 계속 이러한 동료들만 만날 수 있는 것인가? 어떤 일을 내가 하지 못하면 그 일은 누가 하게 되는 것일까? 어떤 일은 누구만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문제는 특히 ‘급할 때’나 ‘돈이 부족할 때’ 도드라지게 된다. 우리가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온 사회의 속도를 우리는 거부하지 못하고, 그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이 어떤 일을 하게 된다. 비용적으로도 효율적으로도 그렇다. 나는 그럴 때 잠시간 몸은 편안할지 몰라도 어떤 불안을 느낀다. 나는 너무나도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원하는 사고를 하는 사람인가? 능력주의에 절여진 사람인가? 하지만 어쩔 것인가. ‘좋은 동료’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고, 나는 요즘 유행하는 ‘돌봄’이라는 단어에서 종종 유토피아적인 냄새를 맡게 된다.
매일 아침 나는 뱃가죽을 콕콕 눌러보며, 나의 창자가 잘 들어 있는지 손끝으로 만져 본다. 매일매일 나이를 더 먹고 있기 때문에 애초에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없으며, 점점 노화될 몸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갈지 궁리를 해야 한다. 그 끝점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끝없이 변수를 계산하면서.
궁금한 점. 다들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어떤 동료와 일하고 있을까? 혼자 살 수 없고 함께 살고 함께 일해야 하는데, 어디까지는 개인이 잘 책임지고 소화해야 하는 일이고, 어디까지는 함께할 수 있는 일일까? 물리적인 한계도, 발생하는 감정들도.
잡말레터 S3 8호. 설명할 수 없는 몸으로 삶을 살아 내는 일 (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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