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열면 요즘 내 피드에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게시물부터 뜬다. 작년부터 가장 자주 보는 뉴스 미디어 계정은 《알자지라》 《TRT 월드》[1] 《미들 이스트 아이》[2] 등이다. 다른 데서는 이스라엘에 편향되지 않은 팔레스타인 보도를 찾기 어려웠다. 인스타그램 탐색 탭에는 팔레스타인, 수단, 콩고, 아이티……[3]에 관한 이야기로, 행동주의 예술 포스터로 글과 말이 와글와글하다. 2023년 10월 이래 이스라엘이 벌이고 있는 가자지구 집단학살이나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에서 자행되는 폭력의 기록과 재현을 상대적으로 많이 봤고, “콘텐츠가 된 고통”[4]과 더 빈번히 상호작용을 했기 때문이다.
집단학살 현장의 사진과 영상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타인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을 떠올렸다. 고통의 이미지에 슬퍼하다가도 쏟아지는 이미지에 무감해지거나 연민에 빠져 정치적 개입과 윤리적 책임은 회피하게 되는 결말 말이다. 이런 분석이 다소 고전적으로 느껴질 만한 스마트폰 시대이니, 그 어떤 참상의 내용도 일상 전시, 밈, 조리돌림, 사회 비판, 광고가 평평하게 섞이는 화면에서 결국 ‘스크롤’하게 되는 점도 괴로웠다. 또 소셜 미디어에서 하는 ‘좋아요’, 공유, 게시가 주는 잘못된 성취감과 자기만족을 주의해야 했다.
가자의 상황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고민이 조금씩 이동했다. 팔레스타인은 고통의 스펙터클화에서도 종종 소외되었던 것 같다. 이스라엘은 가자 학살을 ‘목격자 없는 전쟁’[5]으로 만들고 있다. 그 영상과 뉴스가 가자의 기자들과 주민들이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발신한 거라면 오히려 보기 힘들어도 눈을 부릅떠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긴급한 정세 속에선 ‘보는 것’의 윤리를 고민하는 방법과 위치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한편 이스라엘의 식민 지배가 75년 넘게 이어져 왔는데 지금 팔레스타인이 겪는 폭압과 죽음과 비인간화가 처음 발생한 양 충격받는 것이 부끄럽다. 중요한 것은 고통의 이미지를 내가 어떻게 수용하고 행동하는가다.
의문이 들었다. 이해하고 싶다. 나는 생각보다도 나이브했고 너무 무지하기 때문에. 국제법의 한계가 크고 국제 질서는 불평등·불공정하다지만, 국제법을 끊임없이 위반하고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이스라엘에 ‘국제 사회’는 어째서 노골적으로 침묵하고 동조하며 학살을 지원하기까지 하나? 《뉴욕 타임스》를 포함한 미국 진보 진영은 어떻게 이렇게 공개적으로 팔레스타인만큼은 예외로 취급할 수 있나? 그래도 한국 사회는 독립운동에 대한 대중적인 서사와 정서가 형성돼 있는데 왜 많은 한국인이 팔레스타인에 공감하지 못할까/않을까?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은 팔레스타인을, 가자지구를 떠나지 않겠다고 할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의 역사, 시오니즘, 하마스와 ‘비판적 테러리즘 연구’에 대해[6], 팔레스타인 시와 영화에 대해,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의 의제와 고민에 대해 알게 될수록 내가 팔레스타인 문제에 연루되어 있음을 느낀다. 가령 여성이고 성소수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정신 질환자인 나 같은 사람에 대한 혐오를 정치화하고 차별을 제도화하는 극우 세력이 태극기와 함께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드는 데는 분명한 이유와 맥락이 있다. 내가 겪는 어려움과 차별이 팔레스타인인들과도 관련되어 있는 거다. 기후위기에도 전 세계 우경화에도 안전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내가 누리는 특권은 또한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폭력과 억압을 가하는 식민주의 구조의 존속과 결부되어 있다. 보다 직접적으로,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가 100퍼센트 지분을 소유한 자회사 다나 페트롤리엄이 이스라엘로부터 가스 개발 사업 면허를 받아 가자 앞바다에서 가스전 수탈에 참여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점령지 팔레스타인의 해역에 대해 탐사권을 판매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며, 석유공사는 이를 인지하고 있다. 과장 없이 한국 공기업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와 집단학살에 공모하고 있다.[7]
나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통해 제국주의, 인종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 기후위기라는 거대하고 익숙한 문제를 다시금 새로 바라본다. 이것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신신하게 느껴본다. (이런 용어를 인문사회서 원고의 원인 분석 대목에서 만나면 허수아비를 본 듯 머뭇대다 수정 제안 메모를 쓰곤 했는데 말이다.) 현 체제의 대안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감각과 무기력[8]이 조금 가시기도 한다. 엉덩이가 참 무거운 나를 바꾸는 건 앎이 주는 연결의 감각인 것 같다. 물론 팔레스타인 문제는 더 멀고 낯설고 이를 둘러싼 재현의 문제는 더 심각하고 첨예해서 접근하기가 더 어렵다. 이 가는 연결의 선을 붙잡기 위해 내가 가진 시간, 돈, 기술, 인간관계를 충분히 부지런히 이용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의지와 상관없이 팔레스타인에 보다 얽히고 휘말린 상태가 될 것이다.
팔레스타인과연대하는한국시민사회긴급행동이 격주 토요일마다 연대 집회를 열고, 다양한 행동을 제안한다. 긴급행동과 여러 사회운동 단체가 여러 포럼, 강연, 대담, 북클럽을 개최한다. 해방을꿈꾸는씨네클럽은 상영회를 조직한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홈페이지와 메일링으로 현지 정세와 이야기를 빠르게 전하고 왜곡된 정보와 보도를 논평한다. 리시올 출판사 편집자들과 번역가 박종주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된 중요한 아티클과 2023년 10월 이후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기고문 등을 번역해 블로그에 게시한다. 번역가 서제인은 봉쇄된 가자지구 주민들의 글을, 특히 고립 속에서 폭격과 기아 학살을 겪고 있는 이들이 SNS로 급박하게 전하는 상황, 고통과 분노와 예리함과 절망과 삶에 대한 사랑이 담긴, 무엇보다 세계의 대응을 시급하게 요구하는 바로 지금의 목소리를 옮긴다. 나는 이것들의 영향으로 몸과 마음을 조금씩 움직인다. 가끔 용기 내 같이 읽거나 가자고 청해본다.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 여성 해방 없다”라는 말을, 퀴어팔레스타인연대QK48을 통해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 6월을 보내며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는 자긍심도 없다”라는 말을 익히고 느꼈다. 지난주에는 책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포럼에서 “팔레스타인 해방 없이 기후정의 없다”라는 의미를 얻었고 9·27 기후정의행진에 더 기쁘고 굳세게 참여할 거다. 이 구호들은 ‘진짜’다.
이들만큼이나 최근 내게 언어와 관점을 제공해 주는 것은 일본 아랍문학 연구자 오카 마리의 글이다. 40여 년간 팔레스타인과 관계를 이어온 그는 2018년에 낸 책에서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 국경 무인지대 또는 완충지대)의 팔레스타인 난민을 말한다. 1948년 이스라엘이 인종 청소 위에 건국된 이래 발생한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국경의 틈이자 국민국가 사이의 틈새, 또는 국민국가, 나아가 이 세계 자체의 외부라 할 노 맨스 랜드에 거주해야 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노 맨’(no man), 즉 사회적 존재(국민/시민)가 될 수 없는 난민, 법과 정치의 테두리 바깥에서 인권과 존엄을 박탈당한 인간이 된다. 그가 보기에 국경의 완충지대와 수용소는 그 본질 면에서 같다.[9]
법과 국가가 구획한 물리적 공간인 변방[10]과 그곳에서 그저 생명을 유지하는 것만 허락된 삶의 심상이 책 초반부터 들어와, 변방의 가능성을 논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 전에 기억해 둔 영국 작가 앨리 스미스의 말이 나란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부에서 자랐고 그 가치 전부를 물려받았어요. 내가 살아오며 읽은 모든 것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가장자리에서 비범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거예요. [……] 모든 가능성은 가장자리에 있어요.”[11] 이분법과 정상성에 포섭되지 않는 사이, 틈새, 여백, 경계 지대, 주변, 가장자리, 변방의 가치와 역량,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은 내가 일하고 관계 맺고 기쁨을 찾는 데 중요한 기준이다. 변방을 향한 신뢰와 돌봄은 예술에 대한 애호와 통한다. 나의 애매한 정체성과 이야기가 놓일 수 있는 곳도 거기다. 그러나 변방에 시민권도 사회적 성원권도 빼앗긴 존재가 있는 한, 그 현실을 외면하고 방치하는 한 변방을 사고하고 감지하고 표현하는 일이 가능할까. 변방의 가능성도 변방의 예술도 쪼그라들 거다. 미국 시인 앤 보이어는 2023년 11월 16일 집단학살에 반대하고 학살을 묵인·방조하는 편집 방침을 비판하며 《뉴욕 타임스 매거진》 시 편집자직을 사임한 후 서한을 공유했다.
자기표현이라는 기조가 이끄는 현재 질서에서, 때로 예술인에게는 거부라는 수단만이 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거부합니다. 우리를 이토록 불합리한 고통에 순응하게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합리적인’ 논조들 틈바구니에서는 시에 관해 쓰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잔학무도한 완곡어법을, 진실을 윤색하는 지옥도를, 전쟁광들의 거짓말을 결단코 거부합니다.
저의 사임으로 뉴욕 타임스에 시의 크기만큼 구멍이 생긴다면 그건 바로 현재의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구멍일 것입니다.[12]
변방이 은유로만 움직이면 안 된다고 느낀다. 거부만이 시가 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은 시가 낸 구멍을 살피고 시로 구멍을 내는 것만으론 부족할지 모른다. 저항의 형태로서 이름 붙이는 대상이 문자 그대로 ‘사람을 갉아먹는 굶주림’인 곳이 있기 때문이다.
존엄은 사람이 무언가를 소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견뎌내는 방식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기억 역시 저항의 한 형태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고통에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성실하게 기록하는 것은 지워지기를 거부하는 일이다. 나는 동정을 구하지 않는다. [……] 내가 구하는 것은, 내가 끝끝내 고집하는 것은 기억이다. 단지 굶주림만이 아니라, 그것이 지금껏 흐려놓은 정신들에 대한, 마지막으로 남은 차 한 잔을 마시며 떨리던 손들에 대한, 별들이 아니라 포화의 조짐을 찾아 하늘을 훑던 시선들에 대한 기억이다.[13]
가장자리의 성원들에게, 이방의 변방과 우리 영토 내부의 변방은 공명한다.
잡말레터 S3 4호. 변방의 고통에 함께 이름 붙이기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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