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에 정면으로 돌파하는 편이라 이름 앞에 직을 붙여 직진솔이라는 별명을 갖고 살았다. 예약 취소하고 싶어? 지금 전화해 줄게. 농담 같겠지만 나는 고칠 수 있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며 손을 맞잡고 나아가는 방식을 늘 택했다. 불안한 마음을 보살피는 방법은 문제에 정면 돌파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것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폭염으로 꿀벌이 사라진다고? 인도에서 홍수로 100명이 실종되었다고? 매년 버려지는 옷이 330억 개라고? 전화를 걸거나 대화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거대한 문제 앞에 사람은 무력함을 느낀다고 했던가. 죄책감은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의 몫이기에 회피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현실을 피부로 느끼는 사람의 마음은 메마른다. 메마른 마음은 쩍쩍 갈라져 아무리 물을 줘도 갈라진 구멍으로 스며들어 원래의 퐁신한 마음으로 돌아오기 어려웠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나는 이 글을 쓴다. 이것은 기후위기 이야기다.
잠깐, 또 지긋지긋한 기후위기냐고 생각한다면 이 단락까지만 읽어 봐라. “빙하가 녹아서 북극곰이 죽어가요.” 어린이집에 아장아장 다니던 시절부터 우리가 진절머리나게 들어온 말이다. 지구를 지키는 게 중요하고 좋은 일인 건 너도 나도 아는데 이제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내 텀블러는 닳아가는데 지구는 바뀌지 않는다. 아주 조금씩 나아지는가 싶다가도, 계속해서 나빠지기만 한다. 변화가 아닌 위기가 된 기후가 나에게조차 익숙해졌을 때, 옆에 새로운 단어를 붙여보기로 했다. 그것이 직진솔답게 정면 돌파하는 방법이었다. ‘기후위기를 타파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쑈.’ 스스로 무대에 오르기 보다 광대가 되고자 하는, 웃긴 친구들의 농담에 낄낄대는 편이지만 ‘기후위기로 웃겨 보겠습니다’라고 하는 친구는 지금까지 없었다. 몰라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알아서 못 하는 일이 있는데 내 친구들은 알았던 거다. 건드릴 수 있는 주제와 아닌 게 있다는 사실을. 나는 주제를 모르고 이것이 아무도 안 해본 일이기에 마음이 동했다. 에코에 코미디를 합친 ‘에코미디’라는 스탠드업 코미디 크루를 만들었다. 우리는 서울에서 공연을 했고 이듬해 전국 투어를 하고 삼 년 차에 해외 진출까지 했지만 환경 운동가답게 미니멀하게 살아서 아직도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이 없다.
박식하고 교양 있는 환경운동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나를 생각한다면 오해하지 말라. 기후위기를 농담의 소재로 삼는 혁명적인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된 데에는 정상성 범주에서 벗어난 내 삶의 궤도에 있다. ‘페미니스트 되기’, ‘레즈비언 되기’가 명함에 새겨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지난 몇 년간 ‘문화 기획자’라는 이름으로 이런저런 활동을 했다. 온갖 지원 사업을 수행하며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때로는 여성이라는 단어도 스스로에 의해, 동료에 의해, 재단에 의해 검열되었다. 이 세 가지를 뺀 내가 품을 수 있는 가장 무해하고 대중적인 단어는 환경이었다. 환경은 모든 사람이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며, 현재 진행 중인 일이고, 지구에 살아가는 누구나 조금이라도 신경 써야 하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내가 서류에 아주 대단한 거짓말을 뱉는 것은 아니다. 기후위기를 타파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쑈에서는, ‘레즈비언 되기’와 ‘비건 되기’가 얼마나 유사한지 다양한 예시를 나열하며 레즈비언이 얼마나 친환경적인지에 대한 농담을 던진다.
지난 5월 브라질 상파울루 출장을 다녀왔다. 전 세계 페미니스트 300명이 모이는 국제 컨비닝에 한국 대표 레즈비언 활동가로 초청을 받았다. 동양인 여성의 몸에 갇힌 백인 남성이라는 소개 멘트와 함께 스탠드업 코미디로 나의 세션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진솔입니다. 오늘은 제가 처음으로 해외에서, 영어로, 40시간 비행 후에 하는 공연이에요.” 인종, 성별, 나이, 모두가 지닌 배경이 다르지만 같은 페미니스트로서 공유하는 에너지와 웃으면서 놓은 긴장감이 세션에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브라질에서 내 영어의 밑바닥까지 쏟아내어 밥을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잠을 적게 자도 정신이 또렷했다. 조금 더 근사한 표현이나 전문적인 단어를 쓰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영어라는 말 자체보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라는 맥락 안에서 서로가 걸어온 족적을 나누고 마음에 담긴 이야기를 꺼내고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긴수염고래가 내는 20헤르츠의 소리는 주변에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아주 낮지만 그 소리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같은 고래에게까지 닿는 것처럼. 우리는 가장 낮은 곳에서 소리를 내지만 우리의 파동은 지구 반대편까지 나아갈 수 있다. 내 정체성을 온전히 환대하는 공간에서의 안전한 기억은 내 마음 한 켠에 깊숙이 남았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에 혹시 의아한 부분이 있는가? 그렇다. 나는 기후위기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기 위해 총 80시간의 탄소발자국을 남기며 지구 반대편으로 날았다. 잠깐의 데스크 리서치를 해본 결과, 인천공항에서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상파울루를 왕복하는 비행은 도합 36,700km이며 7.3톤의 탄소를 배출한다. 나의 공연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는가…?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페미니스트이기에 이쯤만 생각해 보겠다.
사실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이야기를 하고 싶어 기후위기로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작했다.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기후위기 활동가와 스탠드업 코미디언 이전에 레즈비언과 페미니스트가 있었다. 농담은 기후위기를 담았지만 나는 늘 레즈비언을 말했다. 나의 농담이 레즈비언이고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로 남길 바란다. 레즈비언 이야기가 기후위기 같이 지긋지긋해질 때까지 직진하고 싶다. 레즈비언 말과 페미니스트 말이 진절머리날 때까지 농담을 던지고 싶다. 또 레즈비언이야,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배워서 지긋지긋하다고요!
잡말레터 S3 3호. 기후위기로 웃겨 보겠습니다─ 무해한 단어 속에서 (진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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