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고 싶었다. 17년 동안 함께 연극을 해왔던 극단 동료가 떠난 지 100일이 지났을 때 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추모 전시를 마치고, 이제 정말 그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서로를 다독이면서 ‘어디든 다녀오자’ 했다.
어디로 갈까? 안(못) 가 본 곳으로 가자!
우리가 다녀올 여행지의 첫 번째 조건은 기차로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목포로 가자.
‘내 기억’이란 게 생긴 후 난생처음 재활병원에 이틀 동안 입원했을 때 처음으로 나에게 ‘펜팔’을 하자고 말해 준 장애인 친구가 살던 곳이 ‘목포’였고, 여러 번 광주에 갈 때마다 나를 내려준 KTX의 종착역이 목포였고, 늘 가볍게 떠돌며 살아가는, 나 혼자만의 친구인 무용수가 들려준 고향의 바다가 있는 곳이 목포였고, 세월호가 거치되어있는 곳이 목포다.
목적지를 정했으니 지역의 교통약자 이동지원센터, 일명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기 위해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 홈페이지에서 회원 가입을 하고 몇 가지 서류를 챙겨서 메일로 보내고 심사를 기다려야 한다. 전북, 경남 등 광역으로 묶여 있기는 하지만 이용할 때는 목포, 남원 등 지역별로 가입을 하고 광역센터에 다시 가입을 해야 광역으로 이용을 할 수 있다. 회원가입을 하면 2년마다 갱신을 헤야 하고, 기간을 놓치면 다시 회원 가입을 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절차인지 알 수 없는 행정 절차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이 나 뿐이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마음이지만 소용 없다. 매우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다른 이동 수단이 없으니 지방에 갈 때는 미리미리 준비해둬야 하는 일이다.
먼저 출발한 세 명은 목포역에 내리자마자 신항으로 가기 위해 콜택시를 불렀다. 장애인 콜택시 상담원도 오가는 콜택시의 기사님도 ‘신항’에는 ‘왜 가느냐고’ 물었다. 세월호와 희생자들을 기억하면서 ‘팽목항’까지 갈 수 없어서 목포 ‘신항’에 오고 싶었다고 말했을 때 두 기사님 모두 콜택시를 타고 세월호 거치 소에 온 사람들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 말끝에 팽목항도 목포 콜택시를 하루 전에 예약해서 타고 가서 올 때는 진도 콜택시를 예약해서 타고 오면 된다는 정보도 알려 주셨다. 10주년이 지나기 전에 꼭 단원들 다 함께 팽목항에 다녀오자고 약속했다.
여행 준비를 할 때 숙소만은 미리 정하곤 한다. 체력적으로 일반 객실의 화장실은 사용할 수가 없어서 꼭 장애인 객실을 찾아야 한다. 지역의 관광안내센터 홈페이지나 숙소 예약 사이트에 장애인 편의 시설 표시가 되어 있어도 직접 전화를 걸어서 문의해야 한다. 장애인 객실이 있다는 표시가 있어도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다거나 장애인 객실은 없지만, 수동 휠체어를 사용하는 분들이 다녀갔다는 곳에 예약했다가 낭패를 본 적이 있어서 장애인 객실이 있는지, 객실의 구조가 어떤지 꼭 확인해봐야 한다. 여행은 지역의 환경을 그대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을 둘러 보고 그 지역에서 쉬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휠체어를 사용하면서 묵을 수 있는 펜션, 게스트하우스나 작은 모텔은 거의 없다. 혹시나 해서 콜택시 기사님께 지역 주민들이 가는 맛집이나 숙소를 물어봤지만, 평화광장 수변 공원 근처가 가장 번화하니 휠체어 타신 분들은 그 근처로 가야 편할 거라고 했다. 서울에서 전화로 열 두어 곳 문의 한 끝에 예약한 숙소 역시 평화광장 수변 공원 근처의 호텔이었다.
‘그냥 놀기’로 하고 왔기에 서울만큼 번화한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조금 비싸 보이긴 하지만 경사로가 있는 (맛있을 것 같은 데 경사로도 있었기 때문인지, 경사로가 있어서 맛있을 거라고 생각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정식집에서 저녁을 먹고 관광객들만 가득한 수변 공원을 산책 하고 쉬었다. 다음날은 유명하다는 음식점에 갔다. 우리 일행은 전동 휠체어를 탄 사람 2명, 걷는 사람 3명이었는데 이동할 때마다 콜택시 배차 간격이 다라서 먼저 도착한 일행이 밥을 다 먹을 때쯤에 다른 일행이 도착하곤 했다. 같이 이동할 방법은 저상 버스밖에 없는데 지역의 저상 버스를 타려면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한다. 휠체어를 탄 승객이 적어서인지 우리를 보고도 지나쳐가는 버스를 뛰어가서 잡거나, 아예 도로에 내려와서 버스를 세우기도 한다. 그나마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고달픈 마음으로 저상 버스로 근처 시장을 둘러 보았다.
목포 첫 여행에서 마지막 식사는 동네 맛집에서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기차 출발 두어 시간 전부터 만호동과 목원동 근처를 둘러 보았다. 번화했던 흔적이 남아있는 동네였다. 나지막한 상점과 집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를 둘러 보며 혹시 휠체어를 타고 묵을 수 있는 집과 화장실이 있지 않을까? 수소문하면 할수록 실망할 때가 많다는 걸 알면서도 기대를 그칠 수 없는, 며칠쯤 머물고 싶은 곳이었다. 다행히 작은 턱을 넘을 수 있는 식당을 발견했고, 친절한 사장님께서 의자를 문밖에 내놓고 탁자를 돌려 휠체어를 탄 사람 2명과 걷는 사람 3명이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구수한 갈치조림과 홍어회를 먹으면서 생각했다. 다음에 다시 오자. 그때 다시 와서, 조금 더 천천히 동네를 거닐며 어떻게든 이 동네에서 머무를 곳을 찾아보자!
2024년 변방 연극제가 대전과 목포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게다가 나지막한 옛집이 나란했던, 며칠 머물고 싶었던 내적 친밀감이 있는 만호동 근처에서 공연한다니! 가슴이 설레었던 이유는 적어도 갈 수 있는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몸을 녹이거나 식힐 공간이 어디쯤 있는지 알고 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목포는 이제 나에게 20%쯤 안전한 지역이다. 9월이 기다려진다.
(본 글은 9월 서울변방연극제 프로그램 관람을 위한 목포 방문 전 시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