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6월 20일은 난민을 향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국제연합(UN)에서 정한 ‘세계 난민의 날(World Refugee Day)’입니다. 난민은 종교적인 박해나 전쟁, 정치적인 이슈, 기후 재난 등으로 삶의 위협을 느껴 고국을 떠난 사람을 가리키는데요. 유엔난민기구(UNHCR)(난민을 보호하고 영구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UN기구)에 따르면 전쟁, 폭력, 인권침해 등으로 고향을 떠난 전 세계적 난민 수가 1억 840명(2022년 말 기준)이라고 합니다. 회사로 치면 74명당 1명꼴이니, 난민 문제가 완전히 피부에 와닿는 건 아니지만 이쯤 되면 저 멀리 바다 건너의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난민’ 이슈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지난 2018년 6월 제주도 예멘 난민 입국 이후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시 이 문제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는데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난민을 받아들이자는 입장과, 범죄나 테러의 우려를 지적하면서 난민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 맞섰습니다. 배우 정우성 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제주 예멘 난민들에 대한 이해와 연대를 요청하는 입장문을 올렸다가
다수의 혐오성 댓글에 시달렸던 일을 기억하실 거예요. ”난민 구호는 그 나라에 가서 해라“, ”당신이 봉사활동 다니면서 만난 ‘그런’ 불쌍한 난민‘이 아니다“ 같은 말들이었죠.
기사에 따르면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을 앞세워 난민을 억압하고 혐오하는 일에 동조하기도 했습니다.
난민 수용에 대한 문제는 2021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면서 또 한 번 불거졌는데요. 정부는 현지에서 한국과 협력했던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특별 기여자’로 지정했고, 그들은 이제 우리 지역 사회에 정착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92년에 모든 난민을 차별 없이 보호하는 ‘난민협약’에 가입했어요. 2012년에는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난민의 권리를 지키고 사회 정착을 돕기 위한 ‘난민법’을 만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심사에만 수개월이 걸리고,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 법원에 소송까지 가면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합니다. 여전히 난민 인정률도 낮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도 난민이 살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대중들에게 ‘난민’은 갑자기 등장한 ‘낯선 불청객’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제게 난민은 혐오의 대상도, 불청객 같은 존재는 아니지만, 적어도 당장 내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어떤 긍정의 안일함의 문제인 것 같아요. 언젠가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아닌 남의 일인 거죠. 우리가 하루아침에 살던 집이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면서 사는 건 아니니까요. 어떤 문제들은 내 삶 안으로, 일상적인 것이 되어야만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나는 난민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반대할 뿐’이라는 주장을 보면서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문장에서 ‘난민’ 대신 장애인,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을 넣어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머리도 마음도 복잡합니다. 모든 혐오와 차별은 연결되어 있는데 말이죠.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가치와 신념을 지니고 있을 텐데요. 여러 가치 판단 속에서 절대적인 우열을 가리기란 어려울 거고요. 그럼에도 어떻게 해야 난민을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여기의 삶과 연결되는 이야기로 끌어내릴 수 있을까요. 저는 얼마 전 우연히
<30번의 곰>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어요. 2015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지경애 작가님의 그림책인데요.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녹아 더 이상 북극에 살 수 없는 북극곰이 사람들에게 서툰 글씨로 자신들을 반려동물로 받아달라고 편지를 보냅니다. 지구온난화로 봄꽃이 핀 겨울날,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기후난민’이 된 아기 북극곰들을 분양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책은 첫 번째로 분양된 ‘30번 북극곰’ 이야기입니다.
이름도 없이 번호로 존재하던 30번 곰은 이제 도심의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기업들은 너도나도 북극곰을 위한 전용 냉장고를 생산하고, 펫숍에는 아기 북극곰이 진열되어 팔립니다. 그러나 한때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던 북극곰들은 덩치가 두 배로 커지면서 애물단지가 되고,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들이 유기한 북극곰들에 대한 뉴스가 보도됩니다. 북극에서도, 도시에서도 살 수 없게 된 난민 곰들은 어디에 정착하게 될까요. 현재 국제법에서는 난민을 난민협약 제1조 등에서 정의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나라를 떠난 사람들만을 난민으로 정의하고 있어요. 만일 우리가 기후난민이 된다면 제도적으로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겠죠. 30번의 북극곰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