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계피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저는 모두가 잠든 새벽, 마지막 레터를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아서 그런지 생리 주기가 맞질 않더라고요. 주기가 불규칙한 편은 아닌데, 가끔 일상을 무리하게 지내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몸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요. 그럴 때면 건강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괜스레 걱정도 되고, 갑자기 생리가 시작해서 생리혈이 새면 어떡하지 같은 마음에 불안감도 생기는 것 같아요. 여성이라면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으실 것 같은데, 생리 기간에는 밝은색 옷은 피하게 되기도 하고요.
지난 3월 아프리카 케냐의 글로리아 오워바 의원이라는 사람이 의회에 생리혈이 묻은 흰색 바지를 입고 출근했지만 ‘복장 규정 위반’이라는 이유로 국회 출석을 거부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오워바 의원은 여성의 ‘월경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안을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정치가예요. ‘월경권’이란 모든 여성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월경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데요. 이에 더해 월경으로 인해 차별당하지 않을 권리와 월경과 관련된 정보·서비스 접근권도 포함됩니다. 이 ‘월경권’에는 월경으로 인해 혐오나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고, 월경을 죄악시하거나 금기하자는 사회적 인식을 타파하자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어요. 그는 2019년 첫 월경을 경험한 14세 소녀가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이런 운동에 나서게 되었다고 해요. 당시 소녀는 학교에서 첫 월경을 경험했는데, 교복에 묻은 생리혈을 본 교사가 “더럽다”면서 비난했고, 극도의 성적 수치심을 느낀 소녀는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현재 케냐 여성의 절반은 일회용 생리대를 구매하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고, 아프리카 여학생 10명 중 1명은 생리대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그럼에도 혹시 겉옷에 생리혈이 묻어 친구들 사이에서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 될까 봐 생리 기간마다 학교에 못 간대요. 옷이 땀에 젖거나 음식물을 흘렸을 때 굴욕감을 느끼지는 않으면서, 왜 옷에 생리혈이 새거나 묻었다고 수치심을 느껴야만 하는 걸까요. 저는 생리를 한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했고, 생리대 있느냐고 크게 소리 내어 묻지도 못하는 세대에서 자랐습니다. 생리대는 남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꼭 파우치나 주머니 안에 꼭꼭 숨겨야 한다고 배웠거든요. 생리를 시작하며 다들 꽃다발을 주면서 여성이 되었음을 축하한다는데, 정작 생리할 때마다 너무 불편하고 힘들기만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평등한 월경권 보장은 장애여성들에게는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장애여성도, 비장애여성도 월경한다는 것에서 오는 불편함, 귀찮음은 같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장애 유형이나 활동 보조를 받는지에 따라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다를 수밖에 없는데요. 가령 시각장애가 있는 여성의 경우에는 언제 생리가 시작되는지 몰라 며칠 전부터 생리대를 착용하고 있을 때도 있고, 그러다 보니 비싼 생리대를 그냥 버리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생리대에 점자 표기라도 되어 있으면 좋을 테지만 다 그렇지 않고, 또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대량 구매가 저렴한데 시각장애인에게 접근성이 좋지 않죠. 물론 가족들한테 대신 구매를 부탁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당연한 말인데, 시각장애인에게도 주체적으로 생리용품을 고르고 구매할 권리가 있잖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접 생리대를 고르는 게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장애 중증도에 따라 혼자서 스스로 생리혈을 처리하기 어려운 여성들은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우선 현재 제도에서는 활동지원 서비스가 24시간 지원되지 않아서 제때 생리대를 교체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다 보니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여성의 경우에는 습한 상태에서 계속 앉아있기 때문에 질염이나 방광염, 습진 등의 위험에 노출됩니다. 생리대 파동 이후 생리팬티, 월경컵 같은 다양한 대안 월경용품이 나오고 있지만, 장애여성이 사용하기는 힘들어요. 특히 탐폰처럼 체내 삽입형 월경용품은 활동지원을 받을 때 훨씬 더 내 몸을 밀접하게 드러내야 하는데, 타인에게 이런 요청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잖아요. 잦은 세탁이 필요한 면생리대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이는 단순히 장애여성의 활동을 지원하는 타인에 대한 눈치 때문만은 아닙니다. 타인에게 자신의 몸을 드러내야 하는 장애여성이 가질 수밖에 없는 긴장감, 나를 잘 안다는 이유로 수시로 선을 넘나드는 타인으로부터 최소한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반복해야 하는 노력, 수치심이나 불쾌함 같은 단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들이 뒤따릅니다. 장애여성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순간에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몸을 드러내야 하지만, 상대방은 그만큼 스스로를 드러낼 필요가 없게 됩니다. 게다가 장애여성의 월경권을 단지 몸의 문제로만 이야기할 수도 없고요. 모든 장애여성들이 동일한 경험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장애여성이 놓인 사회적 상황이나 다양한 정체성에 따라 경험도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장애여성이 갖는 복잡한 맥락과 경험들이 이야기될 수 있는 자리가 계속 만들어진다면, 장애여성에 대한 논의가 더는 변방에만 머물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