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풀 꺾인 것 같았는데 아직은 여름이네요. 아침마다 뉴스를 보는데, 매일 일어나는 사건들에 참담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요즘처럼 사회 안전망의 부재를 자주 느낄 때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처럼 마음이 괴롭고 심란해서 감당하기 어려울 때, 여러분은 어떻게 이 시간을 흘려보내시나요. 저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공간에 억지로라도 저를 집어넣고 최대한 머릿속을 비우려고 하는 편인데요. 최근에 애정하는 저만의 동굴은 영화관인데요, 대형 스크린에 나오는 장면들에 집중하면서 크게 웃고, 감탄하고, 슬펐다가, 엄청나게 심각해지고, 그렇게 두 시간 남짓 영화에만 집중하면 세상과 잠시나마 단절된 기분에 숨이 쉬어지더라고요. 지난 주말에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끝이 없는 생존 위기에 처한 다양한 인간군상과 배우들의 열연에 집중했을것 같은데, 그런데 저는 개들이 등장하고 별다른 설명 없이 사라진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게는 인간의 죽음만큼이나 이제는 정말 그만 보고 싶은 죽음이 있습니다. 반려 인구 1,500만 시대로 접어들면서 개를 칭할 때 애완에서 반려라는 단어로 바뀌었고, 주변에서 반려동물와 함께하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이제 많은 사람들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고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가족이라고 부르는 개를 우리나라는 여전히 식용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현행 법률과 규정상 개 식용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개를 비위생적으로 관리하고 방치하는 사육장과 도살장, 이들의 지육을 가공하고 조리하여 판매하는 판매점과 식당 모두가 법 위반이며, 비윤리성으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많은 논란이 야기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매년 100만 마리의 개를 식용으로 기르고 먹고 있죠. 특히 여름 중에서도 가장 덥다는 삼복 날이면 더운 날 기운을 북돋아 준다면서 ‘보양(保養)’이라는 미명 아래 100만 마리의 개들이 도축되고 있는 있습니다. 끔찍하지만 현실입니다.
이미 개의 도살은 불법이고, 개 식용은 찬반의 문제가 아님에도, 여전히 개 식용 철폐의 반대편에는 찬성의 목소리가 계속 있죠. 왜 개만 특별 대우를 하느냐, 그럴 거면 소, 돼지, 닭도 먹지 말아야지, 식용 개와 반려 개는 다르다, 개인의 먹을 권리와 자유 탄압이라는 말들도 있더라고요. 이때 항상 함께 등장하는 이야기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오래된 우리나라 개 식용의 역사입니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모든 계층에서 개를 식용으로 즐겼습니다. 궁중 수라상에는 개를 찐 구증이라는 단골 메뉴가 있었고, 퇴계 이황은 개와 한약재를 함께 고아낸 일명 ‘개소주’를 8대 보양식으로 꼽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동의보감을 보면 “개고기는 성이 온하고 미는 산하고 무독하다.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혈맥을 조절해 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는 등 기력을 증진시킨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개를 먹는 계기와 이유가 되어 왔습니다. 동의보감에도, 본초강목에도 분명 개 식용의 부작용이 함께 기록되어 있거든요? 열병에 개고기를 먹으면 죽는다는 둥, 죽은 개의 고기를 먹으면 질병에 걸린다는 둥. 그런데도 기사들을 보면 개고기가 인간에게 얼마나 좋은 영양 보충원인지에 대해서만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장터에서 보신탕을 판 곳은 1770년 충남 서천 판교의 백중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큰 농사일을 끝낸사람들이 몰려와 개장국을 사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당시 소나 돼지를 잡을 만큼 풍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개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개 식용은 오래된 한국 전통 식문화의 한 부분으로 여겨져 왔어요.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79년까지 축산물가공처리법에 따라 개를 정식 식육으로 유통시켰고, 개고기를 축산물에서 제외한 것은 1978년입니다. 그러나 식용목적 개 농장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축산법에는 개를 가축으로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렇게 개 식용은 완전한 불법도, 합법도 아닌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고, 성남 모란시장, 부산 구포개시장, 대구 칠성개시장인 전국 3대 개시장으로 자리 잡으면서 거의 50년 동안 성업했습니다.
1988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외국 동물보호단체들이 우리나라 제품과 올림픽을 보이콧하면서 정부는 보신탕을 사철탕, 보양탕 등의 단어로 바꿨고, 서울시는 자체 고시를 통해 개고기를 혐오식품으로 지정해 판매를 금지시키기도 했지만 개 식용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개시장 폐업을 촉구하는 동물보호단체들의 시위가 본격화됨에 따라 성남 모란시장과 부산 구포시장은 폐쇄되었고, 현재 대구 칠성개시장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시대가 달라졌고, 많은 시민들이 개고기 문화 종식을 바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도 역시나 칠성개시장 안에서 보신탕을 파는 식당에서 북적이며 줄을 선 인간들, 살아있는 개 진열과 도살을 중단했음에도 여전히 불법 도살된 개 사체가 판매용으로 인계되고 있는 모란 개시장 기사를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개농장은 가축을 기르는 시설 중에서도 최악으로 손꼽힙니다. 좁은 철장에 개를 가두어 기르는데, 그 크기가 고작 개 한두 마리가 누워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게다가 바닥이 지면에 닿지 않고 구멍이 뚫려 있어 똥과 오줌을 치우기 쉽다는 이유로 뜬장에서 길러진 개들은 바닥에 발을 제대로 딛지 못하기 때문에 한시도 편하게 눕거나 앉을 수 없습니다. 바닥을 밟지 못하니 발바닥이 갈라지고 염증이나 슬개골, 고관절 탈구가 생기면서 매 순간 질병과 부상의 위험에 노출된 채 생을 살아갑니다. 야외에서 지내는 경우에는 추위나 더위, 비바람도 피하지 못하고요. 개들은 하루하루 도심지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로 목숨을 연명하는데, 그마저도 심하게 부패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물은 아예 주지도 않습니다. 어느것 하나 개가 지내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닌데, 뜬장을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바로 개 도살장으로 죽으러 갈때입니다. 죽으러 갈 때 겨우 숨을 쉴 수 있다니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좁은 철장에 구겨진 개들은 또다른 개들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도살장으로 향합니다. 인간들은 개들에게 물을 뿌린 다음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로 기절시킨 후 도살하는데, 한 번에 죽지 않을 경우 여러 번 찔러서 죽입니다. 때로는 목을 매달아 죽이고, 때로는 의식이 있는 상태로도 도살합니다. 생이 죽음에 도달하기까지의 처참한 학대과정을, 바로 옆 철장에 갇혀서 서로의 고통과 죽음을 목격하는 개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나 있을까요. 얼마 전 SBS <TV 동물농장>에서 방송된 개도살 현장에도 다음 자기 차례를 예감이라도 한 듯 공포에 잔뜩 질린 개들의 눈을 보면서 오만가지의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개들은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요. 대부분은 번식장에서 길러지던 개, 여기저기에서 마구잡이로 잡아들인 유기견, 그리고 고작 3만원, 5만원에 함께 살던 가족에게 팔린 개들이었습니다. 인간은 왜, 무엇을 위해서, 이토록 잔인하게 타인을 함부로 대하고, 죽이고, 먹는 걸까요.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고 잔인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인간만큼 더러운 것들은 없다고 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