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디터 계피입니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지난 레터의 주제인 ‘폴리아모리’를 이어받아 오늘도 변방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얼마 전 새롭게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대뜸 남자친구는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남.자.친.구? 아니, 요즘 시대에 남자친구요?!!”라는 말이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꿀꺽 삼키고(네, 상대가 저의 직속 상사였습니다) “아 네 뭐 하하핫” 라면서 적당히 웃어넘겼습니다. 서로 함께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 대화를 이어가기 위한 소재일 뿐, 큰 의미가 있는 질문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이 잠깐의 대화에서 두 가지의 이유로 마음이 요상해지더라고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공공연하게 “애인 있어요?”, “결혼했어요?” 와 같은 사적인 질문을 남발하는 문화가 있었죠. 제가 체감하기로 ‘#○○계_내_성폭력’ 운동을 지나 ‘미투(#MeToo)’ 운동 이후로 직장에서 연애나 결혼, 출산, 가족 등 업무와 관련 없는 사적인 영역에 대한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많고 많은 드라마 중에서도 2019년에 방영한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를 아끼는데요. 배타미 본부장(임수정 분)이 엘리베이터에서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최봉기 팀장(우지현 분)과 우연히 만나 대화하던 중 ‘애인’이라는 말을 쓰는 장면이 나와요. 요즘 시대에 올드하게 애인이 뭐냐고 다들 여친이라고 그런다는 최봉기의 말에 배타미가 “그쪽이 게이일지 바이일지 스트레일지 몰라 배려한 건데.”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그래! 요즘 시대니까 더 애인이라고 해야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받았던 질문이 불편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여성이니까 당연히 남성을 만나겠지, 대충 이 정도 나이가 되었으니 당연히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하고 있겠지와 같은 이성애 연애 여부에 대한 질문이 뒤따라와서 당황스러웠던 것 같아요.
사회에서 퀴어(성소수자)가 가시화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동성애자 아니면 이성애자여야 한다는 이분법적 생각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레즈비언, 게이와 같은 동성애자는 알겠고, 트랜스젠더도 어느 정도 그 존재가 인식되고는 있는데 반해 양성애자는 여전히 음지에 머물러있는 듯합니다. 양성애자, 즉 바이섹슈얼은 여성과 남성에게 끌림을 느끼는 정체성, 사람을 말해요. 그래서인지 바이섹슈얼(이하 바이)은 성적으로 문란할 것이다, 여성도 남성도 만날 수 있으면 양다리 걸치겠지,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편견과 오해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요. 동성애자 공동체 안에서도 바이라고 커밍아웃을 하면 10초간 정적이 흐릅니다. 게이는 잘 모르겠고, 적어도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바이는 입장 불가, 바이 절대 사절, 바이는 안 만나고 싶다는 사람도 많아요. 바이를 혐오하면서 동성애자들이 제일 많이 쓰는 말이 “배신자”, “욕심 많다”, “바람둥이”, “박쥐 같다”는 말들인데요. 이솝 우화에서 박쥐가 동물 편에 붙었다가 새 편에 붙었다고 했다는 이야기 때문에 바이는 이쪽도, 저쪽도 만날 수 있다는 이미지가 씌워져 있더라고요.
왜 퀴어 공동체 안에서, 특히 동성애자 공동체 안에서 바이 혐오라는 유구한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 걸까요? 애써 이해를 해보자면, 뭐 심정적으로 이해는 돼요. 지금은 나랑 연애하지만 결국은 남자랑 결혼할 거잖아, 남자랑 바람피우면 어떡하냐, 나랑 만나다가 다른 여자 만나는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남자랑 사귀면 허무하다, 나랑 만난 순간이 다 가짜 같다, 바이는 못 믿겠다, 바이는 다 그렇지, 와 같은 혐오와 비난의 말들이요. 그런데, 동성끼리 만나면 절대 바람 안 피우고 백년해로 하나요? 결혼한 이성애자 부부들도 바람나던데요. 바이라고 하면 남자랑 섹스하는 게 좋냐, 여자랑 섹스하는 게 좋냐라는 사적인 질문도 서슴없고요. 바이한테 더 끌리는 대상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물어보고, 남성 만나는 바이는 이성애자로 취급하는 것도 그래요. 지금 여성/남성을 만나는 거면 마음 편하게 레즈비언/헤테로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 어차피 지금 다른 성별 만날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도 하고요. 맙소사,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요. 양성애자 혹은 범성애자 등이 동성을 만나다가 이성을 만난다고 해서 이성애자가 되는 것도 아닌데요.
제일 궁금한 건데, 대체 ‘찐 레즈비언’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 거예요? 그동안 여성만 만났으면 찐 레즈비언로 인정받는 거예요? 바이는 레즈비언에 가까운 바이여야만 레즈비언 커뮤니티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대요.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끌린다거나 남성이랑만 섹스를 해봤다고 한다면 진짜 바이는 아니라는 거죠. 그놈의 진짜! 진짜! 저는 진짜 레즈비언, 진짜 게이, 진짜 이성애자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혐오가 혐오를, 차별이 차별을 낳는다는 건 알겠어요. 이성애자들 중에서 호모포비아가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바이포비아(*동성애혐오증을 뜻하는 호모포비아라는 말을 변형하여, 양성애자에 대한 혐오를 바이(섹슈얼)포비아라는 말로 표현한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솔직히 좀 답답해요. 스스로가 동성애자인 동시에 호모포비아라니요. 이러니 바이들이 스스로 바이섹슈얼이라고 정체화하기 힘들어하거나, 퀴어 커뮤니티 안에서도 바이라고 커밍아웃하기 어려워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만일 바이인 애인이 당신과 헤어지고 다른 성별과 만난다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거라고 생각하실 수 있기를 바라요. 더불어 혹시 주변에서 단 한 번도 퀴어를 못 봤다는 사람이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웨이브(Wavve) 연애 프로그램 <메리 퀴어>에서 홍석천이 하니에게 던진 “눈치가 없구나.” 짤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퀴어는 어디에나 있어요. 다만 사회적 차별과 혐오 때문에 드러낼 수 없을 뿐이죠. ‘그런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당신이 소위 ‘안전한 사람’이 아니어서일지도도. 혹시 주변 사람이 당신에게 “나 퀴어야”라고 커밍아웃했다면, 당신에게 한 가지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친한 사람이나, 애인에게 제발 “내 친구 ○○ 퀴어다”라고 하지 마세요. 그거 엄연한 아웃팅이에요. 나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내 애인은 열린 사람이라서 네가 퀴어든 뭐든 다 이해해, 남자친구랑은 결혼할 사이라서 내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꼭 소개하고 싶었어, 같은 말들이 퍼뜩 생각나실 텐데, 미안하지만 그딴 거 상관없어요. 방금 당신은 소중한 사람 하나 잃으신 거예요. 그리고 같은 퀴어들끼리도 아웃팅 좀 하지 마세요. 오픈퀴어라고 해서 모두한테 커밍아웃한 건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