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디터 계피입니다. 이렇게 메일로 처음 인사드리니 사뭇 떨리네요. 첫 만남으로 어떤 이야기들을 쓸까 고민하다가 최근에 다시 수영을 배우면서 들었던 생각을 꺼내 봅니다.
한 해가 바뀔 때마다 점점 체력은 바닥을 치는데도 운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동안 살아남기 위해 헬스, 수영, 요가, 탁구, 마라톤, 스쿼시, 크로스핏 등 나름대로 운동을 해보긴 했는데 오래 가지 못하더라고요.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간의 기대수명이 100세에 가까워진 이른바 ‘백세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고양이, 개랑 130세까지 오손도손 건강하게 살고 싶은 인간이라 천수를 누리기 위해 올해부터 평생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찾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3월부터 아침마다 꾸물꾸물 수영을 다니고 있습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동네 구립 수영장에 도착합니다. 이미 로비에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부지런함에 놀라고, 이미 첫 타임 강습을 마친 중년, 노년 여성들의 활기에 또다시 놀랍니다. 한창 미라클 모닝이 유행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요가 수련을 몇 번 시도했다가 금세 침대와 한 몸이 되었거든요. 공복에 잠이 덜 깬 몸으로 수영하는 건 생각보다 고된 일입니다. 그런데도 물 속에서 20바퀴쯤을 돌고 나면 마치 뇌를 통째로 꺼내서 씻어낸 것만 같은 그 감각이 좋았습니다. 게다가 차갑고 상쾌한 새벽 공기를 뚫고 수영을 하고 나오면 해가 떠 있어서 오늘도 힘차게 하루를 시작한 스스로가 꽤 만족스럽기도 하고요.
그렇게 한 달을 부지런히 다녔더니 재등록 시기가 왔습니다. 구에서 운영하는 수영장 수강 신청이 얼마나 치열한지 다녀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제가 다니는 수영장은 웹사이트에서 기존 회원들 먼저 재등록 신청을 할 수 있길래 냉큼 다음 달 수영 강좌를 등록했습니다. 수영강좌를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하려는데 “가임 여성 할인(10%)”가 자동으로 등록되어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여성이라고 생리 기간을 빼주는 건가?” 싶었습니다. 엄청 비싼 강습료는 아니지만 어쨌든 할인받으니 좋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불현듯 이 웹사이트에서 내가 가임 여성인지의 여부를 어떻게 알았을지 궁금해졌습니다.
회원가입 때 써넣은 출생년도와 ‘2’라는 숫자가 저를 ‘가임 여성’으로 식별하게 했던 걸까요? 아마도 그럴 거예요.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제 안에서 스멀스멀 생겨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해결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주민등록증 상의 숫자들이 나를 임신이 가능한 여자라고 확신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아직 가임력을 검사받아 본 적은 없지만 내 몸의 상태를 가임기 여성이라고 구별된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만일 내가 불임일 경우 이 할인제도 앞에 선다면?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데 왜 가임력으로 구분을 짓는 걸까?
검색해보니 2020년에 수영장 여성 할인에 ‘가임기 여성 ’이라는 표현의 부적절함을 다룬 기사가 꽤 있었습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대부분의 공립 수영시설 안내문에서 13~55세 ‘가임기 여성 ’에 한해 이용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었어요. 아니, 여성의 가임기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는데 대체 누가 무엇을 근거로 이런 기준을 정한 걸까요? 2016년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에서는 가임기 여성의 수를 지역별로 써넣은 ‘가임기 여성 지도’를 공개했다가 거센 비난 여론에 하루 만에 삭제했던 적도 있었으니 어쩌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닐지도 모르죠.
사실 수영장 여성 할인제도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해요. 전국의 여러 공립 수영시설에서 실시하는 ‘가임기 여성 할인’ 제도는 2006년, 한 여성이 매달 생리하는 동안 수영장을 이용하지 못하는데 남성과 동일한 강습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에서 시작되었는데요. 이 주장은 당시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었고, 시민단체 희망제작소가 정부와 지자체에 개선을 요구하면서 2007년부터 지금까지 여성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하지만 임신할 수 있는 몸이니까 혜택을 준다는 논리 말고 다른 방식은 없었을까요?
할인 많이 해주면 좋은 거지, 뭘 그렇게까지 따지고 드느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임기 지도에서 가임 연령과 표현까지, 여성을 임신력/출산력으로 보는 정책과 정부기관에 비판과 문제제기가 지속적으로 있어 왔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알고 나니, 여전히 동네 수영장 안내문에 쓰여져 있는 ‘가임 여성 할인’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럼 어떤 표현으로 바꾸는 게 적절할까요? 새로운 제안의 기회가 생긴다면 저는 다른 관점에서도 고민해보고 싶어요. 여러분들에게 ‘여성’은 누구인가요? 저마다의 생각과 입장이 있겠죠. 규범적인 여성(성)은 무엇이며, 누가 여성인지 아닌지에 대해 하나의 답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우리에게는 타인의 가시화된 몸을 보고 성별을 판별하거나 승인할 권한도 없고요.
잡말레터 에디터 계피 드림 |